아주 먼 옛날, 말하는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 지 매일 물어보는 왕비가 있었다. 하지만 그 거울은 단 한번도 왕비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더 예뻐질 수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인 지금, 드디어 어떻게 해야 백설공주만큼 예뻐질 수 있는지 똑똑하게 설명해주는 ‘스마트 미러’ 가 등장하였다.

내 손 안의 인공지능 뷰티 큐레이터

지난 달,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이 캐나다의 증강현실(AR) 기술 기업 모디페이스를 인수한다고 밝히면서 뷰티업계에도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올 것임을 암시했다. 사실 뷰티업계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이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어 왔다. 더 이상 소비자들이 한 가지 토너나 한 가지 크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외적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제품을 적절하게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직면하게 되면서 이를 해결해 줄 전문가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은 화장품을 사러 브랜드샵을 가거나 가까운 드럭스토어만 방문해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미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스마트 미러의 기능은 단순하다. 수많은 제품 중 나에게 맞는 제품을 잘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거울에 달린 카메라로 소비자의 전반적인 피부 상태를 체크해주고 이에 맞게 큐레이션 해주거나, AR 기술을 이용해 가상 메이크업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맞는 컬러를 찾을 때까지 화장품을 바르고 지워야하는 번거로움을 줄여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스마트 미러가 갈수록 개인화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뉴트로지나(Neutrogena)는 CES 2018에서 피부 건강 상태에 따라 맞춤형 제품을 추천해주는 Skin 360 제품을 공개했다. 올 여름 출시를 앞둔 이 제품은 모바일 앱과 연동된 스킨 스캐너를 통해 사용자의 피부 모공, 주름, 수분 상태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이에 맞는 자사 제품을 추천해준다. 정밀한 센서와 30배 확대 렌즈까지 탑재시킨 기술력에 전문 학술팀의 분석 알고리즘까지 더해진 Skin 360으로 사용자는 더 이상 피부과에 가지 않아도 간편하게 자신의 피부 상태를 진단하고 맞춤 관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화장품 기업뿐만 아니라 유통사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뷰티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의 뷰티 리테일러 세포라(Sephora)는 버추얼 아티스트(Virtual Artist)라는 앱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다양한 메이크업 제품들을 가상으로 테스트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한다.

Sephora Virtual Artist, https://ift.tt/1PxmqQR

아직 국내 소비자들에겐 뜨뜻미지근한 반응, 왜?

이렇게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뷰티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미미한 편이다. 모든 걸 다 해결해줄 것만 같은 AI기술이 놓치고 있는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뷰티 카테고리에 대한 소비자의 브랜드 로열티가 점점 낮아지면서 고객들이 특정 화장품 브랜드 앱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새로운 경험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실제로 작년 한 해 동안 밀레니얼 세대들은 평균 9.5개의 화장품 브랜드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의 브랜드 제품만 추천해주는 브랜드 AI 앱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둘째, 화장품 구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의 촉감이 모바일 앱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같은 립스틱이라도 소비자가 느끼는 질감과 밀착력, 향은 천차만별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라고 해서 단숨에 구매를 결정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때문에 AI 서비스가 제품 선택에 도움은 될 수 있으나 실제 구매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셋째,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콘텐츠가 부족하다. 뉴트로지나와 세포라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AI 기술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굉장히 단순하다. 사용자의 피부 상태를 확인하고 이에 적합한 제품을 추천해주는 방식이 전부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꾸준히 유용한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호기심에 의한 단발성 체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AI 기술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소비자의 Un-met 니즈를 파악하여 똑똑한 기술의 붐업을 유도해보고자 한다.

1. 매일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뷰티호핑족을 위해

T.P.O(Time, Place, Occasion: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화장품을 다르게 사용하는 습관에서 나아가 날마다 새로운 제품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뷰티호핑족(Beauty Hopping)까지 등장하였다. 단일 브랜드에 로열티를 갖지 않고 용량이 적은 제품을 다양하게 구매하여 사용하는 소비층인 뷰티호핑족을 위해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신선한 화장품을 제공해주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에 AI 기술을 접목해보자. 가령 어제의 피부 상태에 따라 오늘의 화장품을 배송해주는 데일리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로 뷰티호핑족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다. 여기에 화장품 성분 분석과 사용자들의 솔직한 리뷰 데이터가 있는 화해 어플과 콜라보레이션한다면 좀 더 신뢰성 있는 큐레이션이 가능할 것이다.

2. 화장품 고르는 일 조차 부끄러운 화.알.못 남성들을 위해

외모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가는데 아직도 올인원 로션만 바르는 화.알.못(화장품을 알지 못하는) 남성들이 있다. 사실 그들은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 자신의 피부 고민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도, 이것저것 발라보며 나에게 딱 맞는 제품을 찾아보는 것도 부끄럽다고 입을 모은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뷰티업계는 남성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지금도 오프라인 매장을 가보면 남성들의 피부 고민에 귀기울여 줄 남성 큐레이터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미(美)의 카테고리에서 소외되었던 남성들의 수줍은 뷰티욕구를 해소시켜주는 남성 전문 AI 뷰티 서비스의 도입을 통해 티 안나는 큐레이션을 제공해주는 건 어떨까. 화장품 매장에 들어선 순간 미아가 되어버리는 남성들이여,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고 알아서 척척 화장품을 추천해주는 AI 앱을 켜보자.

3.  오늘의 예쁜 내 모습이 궁금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누구에게나 예뻐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자신의 피부 상태가 어떤지, 어떤 메이크업이 잘 어울리는지 알기가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말이다. 하지 않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시각장애인들에게 피부관리와 메이크업은 못 하는 일에 가깝다. 기업의 CSR 차원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메이크업 클래스가 종종 열리긴 하지만 단발성에 그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얻기도 어렵다. 시각장애인들이 뭔가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반복숙달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AI 앱은 가장 밀접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가르쳐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따라서 AI 앱에 음성 기능을 강화하여 이용자의 피부 상태에 맞춤형 제품을 추천해주고 메이크업할 때 정확한 손의 위치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점점 더 예뻐지는 그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진정한 스마트 미러가 될 것이다.

스마트한 AI 기술로 누구나 예뻐질 수 있는 세상

외모도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멋진 연하남과의 연애를 꿈꾼다면 밥만 잘 사줘선 안되고 예뻐야 한더랬다. 뷰티업계에 들어온 AI 기술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예뻐질 수 있는 똑똑한 큐레이터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더 좋은 화장품을 추천해주거나 다른 이와의 비교를 통해 더 예뻐져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기보다, 사용자 본인이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알려줄 수도 있는 콘텐츠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먼 옛날 백설공주를 질투했던 왕비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