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셔터스톡>
맥도날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왕푸징은 베이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1백 년 넘은 가게부터 명품가게, 소품과 기념품 가게, 꼬치구이 같은 다양한 먹을거리를 파는 골목까지 모여 있습니다. 중국 옛말에 이곳에 가게를 열면 하루에 황금 한 말은 충분히 번다고 할 정도로 번성한 상업지역입니다. 늘 사람들이 붐비는데, 1992년 4월 24일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맥도날드가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선 곳은 왕푸징 거리의 남쪽 입구로, 베이징을 동서로 가르는 중심축인 창안대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베이징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선 것입니다. 좌석이 700석이었고, 카운터는 29개였습니다. 이날 4만 명이 맥도날드를 찾았습니다. 이제 중국에서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중국인이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중국인도 많았습니다. 베이징의 상징인 왕푸징에, 그것도 입구에 커다랗게 맥도날드의 ‘M’자가 걸리는 것에 분노한 것입니다. 맥도날드는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데, 어떻게 베이징의 중심에 매장을 허가해 줄 수 있느냐는 불만이었습니다.
중국 베이징 번화가의 맥도날드 매장 <출처 : 셔터스톡>
중국 정부가 맥도날드를 베이징에 허가한 것은 중국과 미국이 수교하던 1978년에 코카콜라를 들여오면서 개혁개방 정책을 세계에 알린 것과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가 벌어진 뒤 한동안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지속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그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개혁개방을 지속하겠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낸 것입니다.
맥도날드를 허가하면서 중국 정부가 고려한 정치적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맥도날드에 열광하거나 분노하는 중국인의 대조적인 모습은 미국을 대하는 이중의 감정을 잘 보여줍니다.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스타벅스라든가, KFC 같은 미국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중국인의 심리에는 일반적으로 이런 이중의 감정이 존재합니다. 많은 중국인에게 맥도날드 햄버거나 스타벅스 커피는 단순히 커피나 햄버거가 아닙니다. 발달한 미국의 최신 문화와 최신 라이프 스타일의 상징물로서, 동경과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맥도날드 햄버거나 스타벅스 커피를 먹으면 뉴요커가 되거나 미국 중산층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이나 신분이 상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입니다.
죽을
파는
중국
맥도날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요우티아오와 콩국 <출처 : 셔터스톡>
중국인에게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맥도날드는 최근 들어 과감하게 메뉴에서 중국 현지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작년(2016년) 2월부터 죽을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미국 기업인 KFC는 이미 2002년부터 중국인이 좋아하는 아침 메뉴인 죽과 콩국, 그리고 일종의 밀가루 튀김인 요우티아오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기업은 중국에 진출한 초기에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메뉴를 제공하면서 중국인에게 맥도날드와 KFC에 가면 미국인과 같은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세일즈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세련된 화이트칼라 계층이 즐기는 곳이자 낭만적 사랑이 있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냈습니다. 많은 중국인들도 맥도날드를 현대적이고 미국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맥도날드와 KFC가 미국 맛을 파는 것이 아니라 중국 맛을 팔면서 메뉴를 중국 현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중국인의 기호, 미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데서 벗어나서 중국 문화와 중국 전통을 재발견하는 중국인의 변화된 생각을 좇기 위한 변신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 맛과 미국 문화, 미국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이 중국인에게서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중국인에게 그런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동경과
혐오의
교차
맥도날드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이 말해주듯이 미국은 중국인이 선망하는 나라이자 증오하고 반감을 갖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양가감정은 맥도날드가 베이징에 매장을 열던 무렵부터 지금까지 거의 비슷한 추세입니다. 미국 퓨 연구센터(Pew Research Center)는 해마다 세계 주요 국가 국민의 특정국에 대한 호감도와 혐오도를 조사합니다. 그 결과를 보면 1990년 이후 중국인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와 혐오도는 각각 50% 전후에서 서로 시소를 이룹니다.
이런 경향은 최근 10년도 비슷합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호감도는 2007년에 34%로 최저치를 기록하였고, 2010년에는 58%로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이 두 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40-43% 사이였습니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봄에 나온 결과를 보면,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44%였고, 혐오도는 이보다 6% 높은 50%였습니다. 미중 사이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추를 감안하면 미국에 대한 혐오도가 조금 높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호감도와 혐오도가 50% 전후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인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그처럼 크게 높아지지 않는 점입니다. 미국인을 향한 중국인의 혐오도는 2007년(57%), 2013년(53%)을 제외하고는 50%를 넘지 않았지만 반대로 미국인의 중국에 대한 혐오도는 2012년을 전환점으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년 40%였던 중국에 대한 혐오도는 계속 상승하여 2016년에는 5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반면에 2016년 중국인의 미국 혐오도는 44%였습니다.
세대에
따라
다른
미국을
보는
눈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을 좋게 보는 중국인과 미국을 나쁘게 보는 중국인이 거의 반반을 이루고 있지만, 여기에도 세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중국에서도 우리만큼이나 세대별 인식 차이가 심한데, 미국을 보는 눈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많은 중국인일수록 미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혐오도를 보면 2016년을 기준으로 18세부터 34세 사이의 중국인 중에는 36%가 미국을 혐오했고, 35세부터 49세 사이 연령의 경우 42%, 50세 이상은 56%였습니다. 50세 이상에서 미국을 싫어하는 비율이 제일 높습니다.
미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젊은 중국인들 <출처 : 셔터스톡>
미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할 때 34세와 50세를 기준으로 나눈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기준으로 중국인의 의식을 살펴보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34세 이하 인구는 중국 전체 인구에서 약 절반(47%)을 차지합니다. 이들 세대는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1949-1976)가 끝나고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입니다.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세대이자 개혁개방 시대를 상징하는 세대, 시장경제 시대 세대입니다. 중국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으면서 자라난 세대, 이른바 ‘새로운 중국인(New Chinese)’입니다. 이들 젊은 세대는 미국을 우호적으로 보는 비율이 다른 세대보다 높습니다.
이에 비해 미국을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세대인 50세 이상은 중국 전체 인구에서 약 11%를 차지합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로,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에 대한 경험을 지닌 마지막 세대이자, 시진핑 주석(1953년생)이 그렇듯이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를 이끌고 있는 세대입니다. 현대 중국에서 미국을 가장 적대시하고 반미운동이 가장 심하게 전개된 때가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인데, 이때 성장한 세대가 지금도 다른 세대 중국인에 비해 미국에 가장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주도하는 것도 이 세대입니다.
“호랑이는
트루먼만
먹지”
:
마오쩌둥
시대의
반미
감정
지금 50세 이상인 중국인은 반미 의식과 함께 성장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의 반미 의식을, 베이징대학 교수를 지내고 중국 비판적 지식인의 상징이라는 평가를 받는 첸리췬(錢理群) 교수의 회고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첸리췬은 1939년생으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인 1950년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1956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1960년에 졸업한 사람이어서 마오쩌둥 시대에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중국인을 상징합니다. 그는 자기 세대가 당시 세계질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와 그 이후에 전개된 반미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기 위해 벌인 전쟁이란 뜻으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첸리췬은 중국에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에 터진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하여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과 전쟁을 하고, 그 이후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등 냉전적 대립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세대가 자연스럽게 반미의식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각종 미국 성토대회에 참여하고 제국주의 침략사 등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교육을 통해 미국을 멸시하는 ‘멸미(蔑美)’, 미국을 우습게 보는 ‘경미(輕美)’, 미국 원수로 생각하는 ‘수미(讐美)’의식을 지니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첸리췬의 회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950년대 중국에서는 반미가 교육과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일이삼사오, 산에 호랑이를 잡으러 가자, 호랑이는 사람은 안 먹지, 트루먼만 먹지.” 1950년대에 중국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1950년대에 살았던 중국인이라면 어른이건 아이건 모두가 기억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트루먼(Harry S. Trumam)은 당시 미국 대통령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은 연합군이 만주지역까지 공격할 것을 주장하여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는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을 해임시킨 인물입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중국을 위협하는 미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어 호랑이는 사람은 잡아먹지 않고 트루먼만 잡아먹는다는 중국 아이들 노래 속에서 인간 이하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 노래를 보면, 당시 반미가 중국 사회의 주요 국가 이데올기로써 얼마나 중국 사회에 넓게 퍼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무찌르자 오랑캐(즉 중국군) 몇백 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를 부르면서 중국(당시 호칭으로는 중공)에 대한 적개심을 키울 때, 중국 어린이들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 것입니다.
미국과
전쟁한
중국에
대한
자부심
그런데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고 미국과 정전협정의 주체로 대등하게 맞섰다는 사실은 중국인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계기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인들은 스포츠든 경제력이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졌다고 할 만한 일이 생기면, 민족적 자부심을 느낍니다.
첸리췬의 회고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전력의 연합군과 싸워서 밀리지 않았고 정전협정에서도 당사자 역할을 한 것이 중국인을 고무시켰습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을 선포하면서 “중국인이 이제 일어섰다”고 선언했는데, 마오의 말을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첸리췬은 이를 두고, “거의 모든 중국인과 중국인이 중국이 이제 일어섰고 세계판도에서 독립적이고 평등한 지위를 획득했다는 민족적 자부심을 가졌다”고 회고했습니다.
핑퐁외교를 기념하는 우표 <출처 : 셔터스톡>
미국을 미제국주의라고 여기면서 가장 미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때는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기 중에서도 초중반기인 1949년부터 1972년까지입니다. 그런데 1972년에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과 손을 잡고 같이 마오타이 술을 마시고, 양국 탁구 선수가 경기를 합니다. 미중 사이에 이른바 ‘핑퐁외교’가 펼쳐지자 그동안 반미의식에 빠져 있던 중국인들은 순간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중소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전략적으로 화해를 취하려는 중국, 중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공산대국을 분열시키는 한편, 현실적 이익을 위해 미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맞물려서 미중 화해시대가 열립니다. 그리고 중국인의 반미의식은 주춤해집니다.
개혁개방과
미중
밀월시대의
개막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1979년부터 1989년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기까지는 미중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입니다. 1979년 1월에는 덩샤오핑이 처음으로 중국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정식으로 미국을 방문합니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하여 당시 미국인이 갖고 있던 ‘빨갱이 중국(Red China)’ 이미지를 불식시킵니다.
중국의 토플학원 광고
1980년대는 미중 밀월기였습니다. 중국 텔레비전에서 미국은 친절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소개되었고, 미국 관련 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미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집니다. 1980년대 중국에서 유행한 신조어에 디스코(迪斯科)와 토플을 뜻하는 ‘투어푸(托福)’가 들어 있습니다. 중국 젊은이들이 미국 대중문화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미국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토플 시험 열풍이 분 것입니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인에게 미국은 자본주의 부패국가이자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이제 미국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현대화를 실현하는 데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가 됩니다. 특히 낙후된 중국의 현실에 분노하고 중국공산당에게 강하게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요구하던 지식인들이 가장 흠모했던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1980년대 대표적인 반체제 지식인인 팡리즈(方勵之)의 경우에서 보듯이,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미국식 기준에 따라 중국을 개혁하자고 요구했습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당시 대학생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톈안먼 민주화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금까지 줄기차게 미국식 민주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짧게
막을
내린
미국
열풍
중국 드라마 ‘뉴욕의 베이징인’ 포스터
하지만 톈안먼 민주화운동이 탱크에 진압당하고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순간, 중국 사회를 흔든 미국 열풍도 짧게 막을 내립니다. 공교롭게도 베이징 중심가에 맥도날드 매장이 문을 연 1992년 이후 중미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하고, 미국을 보는 중국인의 마음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중국인의 마음의 변화를 반영한 드라마가 1994년 1월 1일부터 CCTV에 반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립니다. ‘뉴욕의 베이징인(北京人在紐約)’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첼리스트인 남자주인공과 그의 아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목표로 한 푼 없이 뉴욕에 갑니다. 갖은 고생 끝에 드디어 성공을 하지만, 결국 망합니다. 당시 중국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미국 현지 촬영을 하여 뉴욕의 여러 가지 생생한 모습을 중국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21회 방영된 이 드라마는 이런 문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면 그를 뉴욕으로 보내라. 그곳은 천당이니까.
당신이 그를 미워한다면 그를 뉴욕으로 보내라. 그곳은 지옥이니까.
1980년대에 중국인에게, 특히 중국 지식인에게 미국은 천당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국인에게 미국은 이제 천당이자 지옥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마오쩌둥 시대에 미국을 보는 눈이 부정일변도였고, 1980년대에는 긍정적인 시각이 주류였다면, 1990년부터 미국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시각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이 갈수록 높아져가고, 반면에 이런 중국의 빠른 성장을 보면서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하자, 중국인 마음에서는 반미 민족주의 정서가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중국
봉쇄론과
비등하는
중국인의
분노
1992년 미국 민주당 클린턴정부가 들어선 뒤 미중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중국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문제를 더욱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등, 미국은 소련이 해체된 뒤 유일한 사회주의 대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1994년 말에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57%의 미국인이 중국의 발전이 미국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응답하는 등, 미국 사회에서 중국 공포감이 확산되고 중국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봉쇄론이 대두하기 시작합니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중국에서 1980년대 확산된 미국을 보는 긍정적 시각을 밀어내고 부정적인 시각이 빠르게 확산되는 일련의 사건이 1993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일어납니다. 먼저, 1993년 7월에 미국이 중동으로 항해하는 인허호(銀河號)라는 중국 화물선에 이란에 공급하려는 화학무기의 원료가 실려 있다는 이유로 함대와 비행기를 동원해 추적하다가 공해상에 정지시키고 3주간 억류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조사 결과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중국인이 격분합니다. 공해상에서 중국 배가 미국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중국 국민들은 미국에 항의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중국 정부는 미온적이었습니다. 중국 정부로서는 미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신청을 해 둔 상태였고, 투표가 9월로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9월 23일 새벽 2시에 실시된 최종투표에서 베이징은 시드니에 밀려 2000년 올림픽 개최에 실패합니다.
4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3차까지는 베이징이 내내 선두를 차지했지만, 마지막에 2표 차이로 시드니에게 밀렸습니다. 중국인들은 마지막에 미국과 영국이 조직적으로 시드니를 밀어서 베이징이 실패했다고 분노했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 중국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중화민족의 간절한 여망을 미국이 짓밟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비등하는 미국에 대한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일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예민한 타이완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미국은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던 타이완 총통 리덩후이(李登輝)가 미국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하고 리덩후이는 미국을 방문하여 코넬대학에서 연설을 합니다. 이를 두고 중국인은 미국이 중국의 통일을 막고 중국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미국을 거세게 비판합니다. 반미 민족주의 정서가 절정을 이룹니다.
당시 서점가에서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 <중국은 왜 노(No)라고 말하는가(中國爲什麽說不)>, <중국을 악마로 만드는 배경(妖魔化中國的背後)> 등등, 중국인의 반미 정서에 부응하고, 더욱 부추기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1999년에는 유고 공습을 하던 나토 전투기가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하는 일이 발생하자 격렬하게 반미 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성화 봉송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난 것도 반미 감정을 크게 높이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중국의 베스트셀러였던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미국을
최대
위협국으로
생각하는
중국인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 미국을 보는 중국인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미국은 이제 중국이 부상하는 것을 막고, 중국의 통일을 방해하면서 중국의 분열을 바라고, 중국이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국가로 여겨지게 됩니다. 이런 미국에 대한 시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중국인의 마음에 일관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6년 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가운데 중국이 강해지는 것을 미국이 방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2%였고, 가장 중국을 위협하는 요소로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꼽은 사람이 45%였습니다. 더구나 중국인의 약 2/3가량인 75% 중국인이 최근 10년 동안 중국이 세계에서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이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나라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반감, 넓게는 서구사회에 대한 반감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서 마치 시소게임처럼 중국 고유의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문화나 미국 가치보다는 중국의 고유한 가치나 중국 전통, 중국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 보수주의나 민족주의 정서가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국 맥도날드 메뉴의 변화입니다.
군사대립을
넘어
문명의
대립으로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중국 국력이 신장되면서 중국 문화와 중국 가치, 중국 고유의 라이프 스타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중국인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이 낙후되어 있을 때는 중국 문화와 중국 역사를 중국이 낙후하게 된 원인으로 생각하면서 이를 부정하였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제 중국 역사와 중국 문화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문화나 서구문화로부터 중국 문화와 중국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는 문화 보수주의 흐름 혹은 문화 민족주의 정서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2016년의 여론조사에서 약 2/3인 77%의 중국인이 외국 문화의 영향에서 중국인 고유의 삶의 스타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 수치는 2002년보다 13%나 늘어난 것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21세기 이후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G2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서 중국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아니라, 미국 문화와 미국 가치, 미국 제도로부터 중국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중국인들이 점점 서구적인 것, 미국적인 것 대신에 중국 고유의 가치와 제도, 문화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성장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그 갈등이 한층 더 깊은 차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갈등이 군사와 경제 차원을 넘어서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치와 제도, 문화, 생활방식 등 전 방위적인 차원에서 미국적인 것과 중국적인 것이 대립하고 경쟁하는 일이 앞으로 지속될 것입니다. 이 차원의 미중대립은 문명론적 대립이어서, 군사적 대립이나 경제적 대립보다도 한층 깊고, 오래도록 대립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세계사의 쟁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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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nian Zheng, Discovering Chinese Nationalism in China, Cambridge Univ. Press, 1999, p.3 및 「번지는 중국 공포증」, ‘뉴스위크’(한국판), 1995. 7. 19, 1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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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라이터 ON 시즌 2’는 설혜심, 주경철, 최덕근, 진중권, 류동민, 오찬호, 이욱연, 김호 등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이자 유명한 분야 전문가 8인의 지식 콘텐츠를 간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연재 프로그램입니다.
‘파워라이터 ON 시즌 2’ 연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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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원합니다.
발행
2017.03.3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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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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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언급된 각종 통계는 모두 Pew Research Center의 ‘Global Attitudes & Trends’ 조사 결과에 의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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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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錢理群, 「我們這一代人的世界想像」, http://ift.tt/2mU4N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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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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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nian Zheng, Discovering Chinese Nationalism in China, Cambridge Univ. Press, 1999, p.3 및 「번지는 중국 공포증」, ‘뉴스위크’(한국판), 1995. 7. 19, 14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