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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구 – 우리라는 이름의 시공을 기록하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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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티스트

김승구

우리라는 이름의 시공을 기록하는 여행자




김승구 작가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한 패턴의 삶을 살게 됐다. 주 5일제 근무를 따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야근을 수시로 한다. 보다 양질의 양육을 위해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며, 보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더 넓은 아파트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일상의 빈 곳에는 상당한 노력을 들여가며 일상 밖의 무언가로 열심히 채운다.

김승구는 그런 삶을 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건축물, 사물들, 문화 현상 등을 다른 눈으로 관찰하고 담아낸다. 그의 렌즈는 대상이 되는 ‘공간 속 현상’을 향해 있지만, 결과물을 보는 관객에게 그것은 곧 ‘삶 속의 나’ 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자신을 향한 치열한 질문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철이 빨리 들었어요.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었고, 외로운 마음을 사물에 감정 이입해서 관찰하게 됐습니다. 고1 때 밤에 밖으로 나가 비닐봉지나 컵라면 용기 등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들을 찍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찍는 건 저의 내면을 마주하는 방식이었고, 제 감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나만의 감정을 솔직하게 볼 수 있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당시는 필름 카메라 시절이었습니다. 아날로그 필름 작업은 처음부터 마지막 현상까지 직관과 흔히들 말하는 촉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를 보기 전까지 나의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는 게 가능할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로 작업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내 직관에 대한 믿음, 나의 감성적인 선택으로 인해 내가 의도하는 것들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계속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김승구, [한옥수영장(Hanok Swimming Pool)], 2017년


Pigment Print, 160x200cm

학창시절엔 혼자 학업과 경제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일 년 중 어느 시기엔 학생이었다가, 다른 시기에는 학교 밖에서 돈을 벌었죠. 제대로 된 여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학생일 때는 돈 걱정을 하고 돈을 벌 땐 사진 생각을 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건 남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서 ‘나’라는 사람이 규정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서 내가 사는 서울이란 공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공간도 규정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며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려고 여행을 가는데, 그때 바뀐 공간에서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서 쫓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유원지, 테마파크, 축제의 현장을 조사하고 다녔어요. 사진기를 안 가져가더라도 가서 지켜봤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여가활동을 보니 그들도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승구, [풍경의 목록(A List of Landscapes)], 2015년


Exhibition view

사람들은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짬을 내어 어디론가 갑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뭐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진 찍고 줄 서서 먹고 그러는 게 한국 특유의 공간 환경에 의한 여가의 특징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과 환경에 의해서 다 엇비슷한 패턴의 삶을 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의 삶은 팍팍한 도시 생활과 짧은 여가의 소비가 뒤섞여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테마파크나 축제엔 온갖 판타지가 다 섞일 수밖에 없죠.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열심히 여가를 즐겨야 하는 낙관적 상상력들을 내가 발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적이란 것이 전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노동과 소비가 일으키는 현실의 공간이 지금 시대의 한국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승구, [팬더하우스(Panda House)], 2017년


Pigment Print, 28x35cm




김승구, [공룡테마파크(Dinosaur Theme Park)], 2018년


Pigment Print, 80x100cm

긴 시간 동안 관찰하며 기다립니다. 요즘 한국 사회 분위기에선 없는, 비효율적이고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작업인 건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못 찍고 오는 날도 있죠. 기술적인 부분이나 상황 변화에 따른 실패의 불안이 공존하는 시간입니다. 계속 기다리며 관찰하고, 예민한 시선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어떤 순간을 찍었다고 해도 끝나는 건 아닙니다. 셔터를 누르고도 사진이 나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 지루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한껏 기대를 품고 있다가 중요한 장면을 찍게 될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물론 매우 비효율적인 건 맞아요.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시간 동안 사람, 사물, 상황 등에 대해서 지속해서 깊이 관찰하고 왜 저러는가에 대해 계속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 혹은 집단과 개인 사이의 관계 등을 반복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친숙한 소품인 디지털 카메라는 즉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바로 선택하고, 어디에 올릴지, 누가 볼지 그리고 어떤 평가를 얻게 될지를 생각하게 되죠. 그 모든 것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순식간에 결정됩니다. 이것은 사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봐요. 우리 사회는 점차 표피적인 관찰에 익숙해지고 간편한 사고를 통해 쉽게 단정하는 행동 양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강 다리를 지나가며 멀리 있는 밤섬을 슬쩍 지나쳐 보고, 축제에 가서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하고는 그것들을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저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저도 그 속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제 작업은 어찌 보면 그런 양상을 더 드러내는 것인데, 작업과정마저 그 모습과 같다면 이런 작업을 못 했을 겁니다.

제가 사는 세상을 제대로 담기 위해 저는 제 호흡과 시간으로 꼼꼼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곱씹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 모두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풍경을 분류하고 다시 시리즈 화해서 일관성을 찾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승구, [진경산수(Jingyeong Sansu)], 2015년


Exhibition view

[진경산수(Jingyeong Sansu)]는 프리미엄 아파트 안에 설치된 조경물이자 브랜드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원래 그 공간엔 없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그 자체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밤섬은 압축성장을 위한 개발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과 멀어진 이후로 현재의 모습이 됐고, 그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공간에 빚어낸 현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베러 데이즈(Better Days)] 시리즈 또한 현대의 한국인이 일과 여가 사이에서 공간을 바꿔가며 드러내는 장면들입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주된 양상인 혼성모방, 압축성장, 여가 패턴, 그리고 그런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노동시간과 여가의 시간이 가진 현실적 문제 등이 보였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즐겨야 하는 도시인들의 숙명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보게 됐죠. [베러 데이즈(Better Days)]의 작업방식을 [데이 트립(A Day Trip)]으로 하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처음엔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여러 작업을 통해 ‘풍경의 목록’이라는 주제에 접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하는 [베러 데이즈(Better Days)]는 사람들의 ‘Day Trip’을 담아내는 저의 ‘Day Trip’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승구, [눈축제(Snow Festival)], 2014년


Pigment Print, 160x200cm


이즈음에서 좀 더 깊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주제에 집중하여 작업의 핵심에 접근하고, 남들과 다른 작업물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답변을 어려워했다. 헬로 아티스트의 신진작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행여나 실재하는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걸 경계한다. 자신과 자신의 작업에 대해 객관적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해서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김승구 작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이 아직 그런 질문의 답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며 난감해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재차 물었다. 한국의 대중들은 아직 사진 작업을 예술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도, 특히 나이가 어린 학생분들은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막막한 경우도 많다. 그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 드리겠는가를 물었다. 이 주제는 인터뷰 사이사이 들은 작가가 지나온 길과 연관된 것이기도 했다. 김승구 작가는 카페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고민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작업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작업 같습니다. 저의 사진들을 예술 작품화 하려 하거나 그렇게 되려고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왜 저 장면을 보고 있는지 그걸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멋지게 포장을 하기보단 사진을 찍고 관찰하고 긴 호흡으로 느리게 생각했어요.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그런 사고를 하는 훈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 만의 시선을 키운 과정이었습니다.

어떤 대상을 두고 몰려가서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미적 취향이나 의견에 휩쓸려 바라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단 혼자 가서 내가 왜 이것을 찍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찾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누가 작품이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혹은 사진이 그저 자료나 혼자만의 취미로 남더라도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작업을 통해 내 안의 진짜 관심사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 과정에서 일관된 시각과 자신만의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전시하면 좋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선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의 과정들과 확신이 중요합니다. 전시를 안 하고 미뤄두더라도, 이대로 끝나더라도, 결심을 하고 접근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담이지만, 김승구 작가가 마지막 질문의 답을 생각 해 보겠다며 카페 밖으로 나가 있던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체감이 아니라 실제로 길었다. 자신의 작업이 가진 구심점을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나름대로 짐작은 했지만,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 나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 하나의 질문 때문에 그 긴 시간 동안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서 나는 작은 감동을 느꼈다. 그 동안 그가 작업을 어떻게 해 왔는지 선명히 이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현 / 칼럼니스트



· 추천의 변

김승구는 사진술의 본질, 그러니까 사진을 통하여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원형적 가치를 추구한다. 사진 속 장면들은 한국인에겐 꽤나 익숙한 장소와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담겨 있다. 헌데 그 익숙한 장면들이 펼친 스펙터클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럽다가도 다른 한편으론 야릇한 애틋함을 자아낸다. 그 이유는 이 장면들이 개발주의 시대 고속 성장의 틈바구니에서 생성된 ‘여가’라는 서구의 근대적 도시문화가 무분별한 개발과 몰취향적인 놀이 산업화와 연결되었는지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여가 활동을 향한 도시인의 집착이 경쟁사회에서의 생존이란 무의식과 분리될 수 없는 필연성을 제시한다. 김승구는 이처럼 도시를 구성하는 기표들과 이를 생존의 수단이나 휴식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광경을 포착함으로써 도시, 건축, 일과 여가의 사회적 · 문화적 · 정치적 관계를 탐구한다.


추천인

정현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 작가소개


김승구

(
https://www.seunggukim.com/

)

김승구는 2007년 상명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 2015년 서울 송은아트큐브에서의 개인전 [풍경의 목록]을 시작으로, 탈영역 우정국 [꿈의 그린], 아트비트 갤러리 [(데이 트립)A Day Trip] 등 다수의 전시를 하였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기쁜 우리 좋은 날], 아트선재 [50X50], 경기도 미술관 [경기 아트 프리즘 2017] 등 여러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이 외에 2014년 송은아트큐브 전시작가, 2016년, 2018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전시작가, 고은문화재단의 BMW포토스페이스 전시작가, 2018년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2019년 시카고 필터 포토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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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구, [삼각산-부아악(Samgaksan-buaak)], 2011년



Pigment Print, 160x2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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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헬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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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발행일 : 2018.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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